소개
사람들이 주목하고 관심을 갖는 기술의 키워드가 매년 새롭게 떠오르는 시대가 되었다. 실체를 명확하게 파악하기도 전에 용어와 트렌드가 바뀌는 경험이 계속되고 있다. 암호화폐의 가치는 격렬하게 오르다가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고, 그 숫자를 보는 경험도 가끔은 가상현실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 사이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 위기는 존재의 기반마저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변화의 모습은 현란하고 혼란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든 부문에서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학적으로 빛을 박제하고, 그것을 활동사진으로 만들어 생생한 이미지 기반의 스토리텔링 세계를 구축해 왔던 영화는 이제 완벽한 디지털화 과정을 통해 복제와 전송이 빛의 속도로 가능한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초고화질이라 하더라도 1분 안에 전송할 수 있게 되었고, 굳이 다운로드를 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이 연결된 곳에서는 어디서든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며, 이제는 종이 티켓을 사기 위해 극장 앞에서 줄을 서며 느끼던 설렘도 오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오히려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시대에 박제된 스토리는 답답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스토리텔링의 본질까지 변화한 것일까? 인류가 오랜 세월 축적해 놓은 이야기 자산은 현재에도 유효한 것일까?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이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XR 부문 ‘비욘드 리얼리티’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맞이하는 스토리텔링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디지털 세상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발견되는 스토리 월드의 모양새를 집중적으로 조망해 보고, 기술과 매체의 변화가 이끌어가고 있는 정체성의 변화, 소통 방식의 변화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본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존재에 다가가는 소통의 경험, 그것이 타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또 다른 ‘나’일 수도 있다. 소통의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람처럼 행동하는 정보의 덩어리일 수도 있다. 반대로 정보의 덩어리로 표현되는 나는 어떤 모습일지도 상상해 보고 경험해 보길 바란다. 확실히 실시간성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세계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과거와 다른 부분이 있다. 과거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그대로 이식하다 보면 영 어색하기 마련이다. 그 지점을 많은 창작자들과 관객들이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경계를 확인하고자 하는 작품들을 모아 선보인다.
공연과 가까워 보이는 작품,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을 활용한 작품, 다양한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을 실험해 보는 가상현실 작품들. 이 작품들이 기존의 영화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느끼기보다는 영화인들의 꿈이 어떻게 확장되어 가고 있는지를 경험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XR큐레이터 김종민